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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질보다 양, 학계 묻지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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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쓰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한 국문과 교수의 푸념이다.

모 대학 이공계열의 한 교수는 “대학 내에서도 ‘프로젝트 전문교수’가 인기를 얻는다”면서 “각종 연구비를 많이 따오는 교수가 학교 이익에도 부합하고 연구를 대신해줄 지도학생들에게 ‘용돈’을 푸짐하게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수들에 대한 업적평가 기준은 발표 논문 숫자이다. ‘다다익선’이라는 풍토에서 ‘논문 쪼개기’ ‘중복 발표’가 횡행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 학술지인 ‘역사학보’가 매년 말 수록하는 ‘회고와 전망’ 2000~2005년 논문에 따르면 발표논문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한국사 관련 발표논문 수는 2001년 약 1,400편에서 2002년의 경우 2,238편으로 한해 사이에 거의 배나 늘었다. 지금도 하루 7편 정도의 한국사 관련 논문이 양산되고 있다.

논문의 양이 늘었다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아무도 논문의 질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오시택 차장은 “대학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발표 논문의 숫자가 호봉과 승진, 안식년 등의 잣대가 된다”며 “대학에서건, 교육부 심사에서건 논문의 질은 고려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영어로 쓰인 논문이 한국어 논문보다 2배로 높게 평가받고, 원고지 2,000~3,000장의 단행본을 쓰는 것과 100~200장 분량의 논문이 똑같이 취급되는 현실에서 장기적인 연구를 하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머리 회전 빠르고 남의 것 잘 베끼는 사람이 인정받아서 돈 타먹고 출세하는 체제”라는 지적이다.

두뇌한국(BK) 21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한국 대학들은 온통 BK21에 혈안이 돼 있다”며 “실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연구비는 타내야 하는 현실에서 계량화된 평가방식만 적용하는 BK21은 좋은 먹잇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수들을 돈에 쪼들리게 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때 입안돼 정권이 바뀌면서도 유지된 미국식 시장논리의 교육정책에 대한 지적이다.

외국은 어떨까. 국민대 정만조 교수(한국사)는 “서양은 수백년, 일본은 100여년간 다져온 논문평가 관련 제도·문화에 비해 한국은 수십년 역사에 불과하므로 외국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경북대 권연웅 교수(한국사)는 ‘불량논문’이 양산되는 배경에 대해 ▲학계의 논평·논쟁 빈곤 ▲학연 또는 명망가 중심의 지식권력 ▲견해가 다르면 적대시하는 학문풍토 등을 지적했다. 권교수는 불량논문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표준화와 품질관리를 꼽았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의 자정 노력 ▲학술지 편집자들의 선별 ▲전문가 논평 등으로 거듭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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