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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재정지원으로 대학의 생존플랜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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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입생 모집에서 심각한 정원 미달 사태를 겪은 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강도 높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간 신입생 수시모집 확대, 수능 최저등급 기준 완화, 면접 제외 등 갖가지 방법으로 버텨왔는데, 올해 지방거점 국립대학들이 엄청난 미달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은 이제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학령인구 감소나 학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거죠." (한 지방거점 국립대 관계자)

올해 지방대를 중심으로 벌어진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는 국내 대학들이 이제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낸 기업들처럼 이제 대학들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구책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위기에 직면한 대학들은 정원 축소와 학과 통폐합, 대학 간 통합 등 다양한 '생존 플랜'을 모색하고 있다. 대학들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정부도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대학의 장기적인 성장을 도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경쟁력 없는 대학의 퇴로를 마련하고, 유연한 등록금 정책 등으로 대학의 재정 건전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 고강도 '정원 감축'은 불가피…"눈앞의 위기 외면하면 함께 망할 수밖에"

대학 구조조정의 핵심은 강도 높은 '정원 감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이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있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정원 감축으로 대응하지 않는 한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정원 감축의 대상이 되는 학과나 학부는 극렬하게 반발하고,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 교직원까지 동원된 저지 작전이 펼쳐진다. 주 수입원인 등록금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대학 당국도 정원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국가부도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한국 경제가 대규모 실업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비용을 무릅쓰고 기업들의 대대적인 인력 감축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타개했던 것처럼, 한국의 대학들도 대대적인 정원 감축이라는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현재 국내 대학은 강력한 정원 감축뿐 아니라 교직원 등 전반적인 대학 구성원을 동시에 줄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많은 대학이 출생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던 시대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에 20만 명대로 떨어진 현재에는 그만큼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심각한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대학 정원 감축이 지금껏 지지부진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정부가 대학 정원의 '인위적 감축'을 사실상 포기하고 대학 자율에 맡기기로 하는 내용의 대학혁신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학령인구 감소세가 예상보다 빨라 대학이 스스로 정원을 줄이고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정부 계획만으로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내세운 '자율 감축'은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20년 전인 노무현 정부 때 7만1천여 명의 정원 감축을 이뤄내고, 이명박 정부가 3만6천여 명, 박근혜 정부는 6만여 명의 대학 정원을 줄였지만, 학령인구 감소 속도가 가팔라진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불과 1만여 명 감축에 그쳤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전체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규모는 올해 7만여 명에서 내년 8만5천여 명, 내후년 9만6천여 명 등으로 급격히 늘어 2024년에는 12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정원 미달 사태가 너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 필요성도 거론된다. 지금은 지방대의 위기이지만,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생각하면 수년 내 수도권 대학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제적 대응에 나서지 않고 다가오는 위기를 외면했다가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 모두 위기에 휩싸이는 최악의 사태를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학생이 가지 않겠다는 대학을 국민 세금으로 살려놓는 것은 학생을 위한 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발등의 불' 대학도 구조조정 속도…"폐교 늘도록 숨통 터줘야"

위기에 직면한 대학들도 자체적인 구조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정원 미달 학과의 정원을 줄이는 것은 물론 경쟁력을 상실한 학과를 아예 폐지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대신 경쟁력 있는 학과의 정원은 늘리고, 미래 성장산업에 인재를 공급할 새로운 학과 신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학끼리 합쳐 생존을 모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강원대는 국내 최초로 '탄력정원제'를 도입해 앞으로 매년 학과별 입학 정원을 조정하기로 했다. 조정 대상은 2년 평균 재학생 충원율이 100% 미만인 학과다. 채우지 못한 정원의 30%만큼 입학 정원을 줄이고, 줄어든 정원은 충원율 100% 이상인 학과에 더해진다. 학과가 폐지될 경우 해당 학과의 교수들은 유사 학과나 교양학부로 옮겨간다.

학사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꾸기 위해 기존 전공끼리 융합해 새 전공을 만드는 '미래융합가상학과' 제도도 운용한다. 'AI 재난과학과', '3D프린팅다빈치학과', '디지털헬스케어융합학과' 등 16개 전공이 이렇게 생겨났다.

부산 신라대는 올해 신입생 확보율이 정원의 약 80%에 그치자 전체 신입생 정원의 15% 상당을 축소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재학생 중도 탈락률이 높은 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탓에 이러한 구조조정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장기적인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아예 대학을 합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1월 경기도 안성에 있는 국립 4년제 한경대학교와 평택의 국립 전문대 한국복지대학교가 대학통합신청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지난달 1일에는 경남 진주에 있는 국립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통합한 '경상국립대'가 출범했다. 같은 달 31일 부산교대는 부산대와 통합을 추진하는 양해각서(MOU) 체결에 합의했다.

아직은 국공립대 중심의 통합 작업이 활발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대학 구조조정을 겪은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앞으로 사립대 간 통폐합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경쟁력을 상실한 대학은 아예 '퇴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내 대학은 1970년 168개에서 2020년 429개로 급격히 늘었지만, 2000년 이후 전국에서 문을 닫은 대학은 올해 초 폐교한 서해대를 포함해 18곳에 불과하다.

대학 퇴출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사학 법인을 해산할 경우 잔여재산이 다른 사립대나 국고에 귀속되도록 규정한 사립학교법 35조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로 인해 매각 등으로 설립자의 재산을 일부라도 환수할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립대 하나를 짓는 데 500억∼600억원이 들기 때문에 이 재산을 그냥 두고 나가기는 쉽지 않다"며 "퇴로를 만들어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국회에서 이런 방안을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경쟁력 있는 대학은 과감히 지원해야"…일본도 '인문계 대폭 축소' 등 고강도 구조조정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경쟁력을 확보한 대학은 정부가 과감한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09년부터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된데다 학령인구마저 급격히 감소해 대학들의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혹독한 구조조정만 요구해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인구 구조나 산업 기반 등에서 수도권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방대의 경우 정부의 지원은 더욱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학문·연구 중심 대학과 직업교육 중심 대학, 소수의 학생만 뽑아 전문적 훈련을 하는 대학,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술이나 지식을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대학 등 나름의 확실한 지향점을 가지고 '생존 플랜'을 내놓는 대학은 과감한 지원으로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과학기술 한국'의 미래를 위해 연구개발(R&D)의 주요 기반인 인재의 지속적 배출이 중요한 만큼, 학문·연구 중심 대학의 경우 학부는 물론 대학원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국내 'R&D 생태계'를 한층 키워나가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성엽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장은 "모든 대학의 정원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며 "운영을 잘 하는 대학은 정원을 유지하게 하고, 국가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등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무조건 등록금 동결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대학의 재정 건전화를 고려한 유연한 등록금 정책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우리보다 앞서 대학의 위기를 겪은 일본의 구조조정 사례를 참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의 18세 학령인구는 1992년 205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1995년 177만 명, 2005년 137만 명으로 급감했으며, 2030년이면 100만 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학생 등록금이 주요 재원인 대학들에 큰 어려움으로 닥쳤다. 2003년 릿시칸(立志館)대 파산을 시작으로 소규모 지방 사립대가 줄줄이 문을 닫는 '대학 도산 시대'가 열렸다.

이후 일본 대학들은 자체적인 정원 조정, 정원 미달 학과 폐지, 규모가 더 큰 대학과의 합병 등 생존을 위한 다각적 방안을 모색했다. 일본에서 손꼽는 명문대인 와세다대도 2032년까지 4만여 명의 정원 중 7천여 명을 줄이겠다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일본 대학의 구조조정에서 두드러진 점은 기업들의 채용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인문계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일본 정부는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며 전국 86개 국립대학의 인문·사회과학·사범 계열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에 후쿠이(福井)대, 신슈(信州)대 등 26개 국립대가 문과 계열 학부를 폐지·축소하거나 다른 학부로 전환했다. 17개 대학은 문과 학부생의 모집 규모를 상당폭 줄였다.

우리나라도 인문계 대졸자 공급과잉 문제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만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내놓은 2014∼2024년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10년간 대졸자 공급 과잉은 79만 명에 달하고, 특히 인문·사회·사범 계열의 구직난이 심각할 전망이다.

김미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국내 대학들의 경영난은 일본이 먼저 겪은 위기와 유사하다"며 "인문계 과잉에 시달리는 국내 대학도 과감한 축소 정책을 펴는 등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중장기적 계획을 시행하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fortu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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