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계열 국립대 조교수 1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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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곳 하이브레인에서 양질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
그로 인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곳에서 얻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저도 용기를 내어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제목에서 밝혀드린 바와 같이, 저는 2018년 3월 한 국립대에 임용되었습니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임용후기를 쓰는 이유는, 교수생활을 하면 할수록 임용이라는 단발적인 이벤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임용 이후 생활에서 부디 저와 같은 어리석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교수생활 첫 1년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교수직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틀린 정보가 있으면 지적하여 주시고, 
최대한 제 자신을 낮추어 글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혹시나 글에서 언짢으신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제가 부족한 탓이니 부디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1. 스펙(?) 

임용과정에서 학력 및 경력이 중요치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어쩌면 가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학력과 경력이 당락을 가르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임용과정에서 발생한 '스크리닝' 과정에서 제 학력이 최소한의 방어막 구실을 한 것 같습니다. 

서울소재 비 SKY 학사(학점 3.5/4.3)
US News 랭킹 기준 전공(대분류) 50위권 이내 석, 박사(다만, 제 전공 및 임용시 공고가 나온 세부전공으로는 10위권입니다) 

국내 공공기관 연구업무 4년 근무

위의 학력과 경력이 다입니다. 
앞으로 반복해서 말씀드리겠지만, 저는 해당분야에서, 혹은 학계 전체로 봐도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것을 학부 졸업 시점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살았다'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CV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CV를 읽으시는 분이 '얘 머리는 나쁘지만 놀지는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제 학벌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원 시절 컨퍼런스도 많이 다니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보고서를 쓰는 와중에도 저서나 논문작업을 쉬지 않았습니다. 물론 학회발표도 계속 하구요. 
CV에 한줄 더 적는 것이 절실했거든요.. 


2. 임용준비 및 지원과정 

본격적인 임용준비는 따로 없었고, 최소한의 연구실적을 만드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각 대학마다 최소 연구실적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을 넘기는 것이 첫번째 목표였고, 
제 은퇴 연령까지 사라지지 않을 확률이 높은 대학들이 요구하는 잠정적인 연구실적까지 도달하는 것이 두번째 목표였습니다. 
학진 기준 500%~700%에서 최초 지원을 시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이브레인에서 읽은 문구입니다. "임용은 주차장에서 자리를 찾는 과정과 같다." 
이 문구를 가슴에 새기고 임용시장에 첫 문을 두드렸습니다. 

2017년 당시 제 전공을 뽑는 국내 대학교가 약 3~6곳 정도 있었고, 
스스로 판단할 때 지원해도 어차피 되지 않을 long shot 몇군데를 제외하고 세군데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경상도 소재 사립 A대, 
비서울 소재 국립 B대, 
서울 소재 사립 C대 

구체적인 대학명을 표기하지 못하는 점 양해하여 주십시오. 세 대학 모두 중앙일보 기준(죄송합니다 기준이 이것밖에..) 10~20위권 대학들입니다.  

이 중 A대는 서류에서 떨어졌고, B대와 C대는 최종면접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B대는 모든 서류를 지원자가 직접 전달해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저 역시 반차를 내고 서류뭉치를 들고 직접 제출해야 했고, 돌아오는 길에 서류 한장이 미비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절차에서 기한과 발표일시는 인터넷으로 공개가 되었고, 
각 절차가 딜레이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면접은 학과 교수님들께서 참석하시는 공개강의와 총장 및 보직자 면접으로 구분되었는데, 
공개강의는 제 논문내용을 15분 정도 영어로 발표하고, 영어 및 한국어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공개강의에 대한 문의글이 하이브레인에도 참 많이 올라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이건 각 학교가 정한 가이드라인보다는 학과 교수님들의 'needs' 및 스타일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각 학과마다 성향이 무척 다릅니다. 
그 학과에 계신 고참 교수님, 혹은 리더 교수님의 성향에 따라 뽑고 싶어하는 인재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당장 다음 학기, 혹은 다음 년도에 학과에서 수행해야 하는 주요 사업 및 강의 등에 따라 인재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과 막내 교수와 30년 가까이 함께 지내야 하는 '식구'를 뽑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넵, 세평과 인성...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공개강의에서 이 부분에 대한 검증을 하려는 교수님도 계신 것 같습니다. 

B대 해당학과의 경우,
1.학과막내교수보다 어린 나이 
2.최소한의 학벌 
3.학과 사업 수행능력
4.연구역량 

순으로 우선되는 선호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질문도 이와 관련된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도 학과내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 논문에 대한 요구수준도 꽤 된다는 것 등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대여서 그런지 총장면접은 형식적이었습니다. 비전, 학교에 대한 인식 유무, 임용될 경우 거주지 이전 유무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C대의 경우, 
B대보다 지원절차가 훨씬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이 대학에도 저는 직접 서류를 제출했는데, 
인터넷으로 진행절차가 공개되지도 않고, 절차를 확인하려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식이었습니다. 
제일 황당했던 것은, 공개강의 및 최종면접에 대한 연락을 학과장과 보직교수의 핸드폰 문자로 받아야 했던 경험입니다. 
그것도 사흘 전, 나흘 전에 각각 연락을 받았습니다. 
반차를 허락받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공개강의는 급하게 마련된 듯한 허름한 강의실에서 진행됐는데, 
행정조교도 없는지 교수님이 직접 호출했습니다. 

1.영어강의능력
2.특정과목강의가능유무
3.연구역량
4.대외활동역량

순으로 관심이 있어보였습니다. 질문도 이쪽으로 집중이 됐고요. 
B대와 달리 C대는 처음부터 내정자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꾸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임용과정이 다 마무리된 뒤 돌고도는 소문을 종합해보니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3. 임용결과 및 이후의 삶 

결과적으로 저는 B대 한 곳에서 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B대에 가서 임용 뒷얘기를 들어보면, 모든 것이 '행운'이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소위 carousel 이 발생해서 제 분야 신임교수 자리가 연쇄적으로 후순위로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즉 처음 두 대학에서 동시에 한 지원자를 선택했고, 그 지원자가 둘 중 한 대학을 택하게 되면서 다른 대학은 후순위자에게 연락하고, 그 후순위자를 택했던 대학은 또다른 후순위자로 옮겨가고.. 하는 식으로 저에게까지 자리가 오게 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작은 반전(?)이 하나 있는데, 당시 저 역시 학교 외 국내 연구기관에 지원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서울 소재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산하 연구원(D연구원이라 하겠습니다)에서 최종합격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고, 
연봉에 대한 안내까지 받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억대연봉.. 꿈만 꿔왔던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현실화되나 싶었습니다만, 

B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많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계신 선배들과 주변 지인들께 문의드리고 숙고한 결과, 최종적으로 학교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활발한 분위기의 사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제가 조금 더 research-oriented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판단은 100% 옳지는 않은 것으로 나중에 판명이 됩니다..) 

B대에서 제시한(=통보한) 연봉은 D연구원에서 제시한 연봉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지원 전 다니던 공공기관보다도 낮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살던 도시를 떠나 거주지 이전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 두었고 (이후 그녀는 "마침 좋은 기회였다"라고 회고합니다..) 
연고 하나 없는 도시로 낮은 연봉만을 약속받은 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첫 학기는 학교에서 마련해준 교내 기숙사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머물렀습니다. 

주거에 대한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종합격이 개강 열흘 전 쯤 통보되었다는 것이었고, 
미리 강의노트를 만들 짬도 없이 바로 강의에 투입되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이건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첫 학기 거의 매일 새벽까지 강의준비를 했습니다. 

첫학기에는 연구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첫학기 이후부터 발생했습니다. 
제가 들어간 학과는 교수님 수가 적은 소규모 학과였지만 수행중인 사업은 인원에 비해 무척 많았습니다. 
결국 저에게도 여러가지 임무들이 부여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1년은 아무말 말고 시키는대로 다 해보자" 라고 결심했기에, 선배교수님들이 던져주시는 수많은 연구제안서를 썼고, 
대학원생 모집을 위해 여기저기 행사에 뛰어다녔습니다. 
어찌보면 '영업'을 한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학기까지 정신없이 지나갔고, 제 손에는 열편 남짓한 연구제안서와 초과강의수당, 공동집필한 교과서 두권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겨울방학동안 방에 틀어박혀 논문을 썼습니다. 
제 개인 연구사업인 학진 신진연구 지원서도 썼구요. 
하지만 후배교수에게 행정업무 등 봉사업무를 떠넘기는 문화에서 여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여서, 
선배교수님들이 넘기신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방학을 보냈습니다.

교내 동기교수들, 그리고 타학교에 계신 동년배 교수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상황은 비슷비슷하더라구요. 
아무리 열심히 사는 교수라도 첫임용 후 1~3년동안 레쥬메에 공백이 발생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면 다들 학과장이나 주임교수같은 봉사업무를 하나씩 떠 안았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동병상련(?)의 정으로 위로받았습니다. 

처음 두 학기를 보내며 제가 깨달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 누구도, 심지어 학과 선배교수조차 내 상황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2. 연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지속해야 한다. 나중에 인정받는 것은 결국 연구결과다 
3. 강의를 소홀히 해서도 안된다. 아무리 각종 행정업무에 시달리며 살아도 학생이 뒷전이 되어서는 안된다 
4. 방학을 알뜰하게 보내야 한다. 놀고 먹는 기간이 아니라 기존 연구결과를 마무리짓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5. "논문은 학생들 시키면 되지" 라는 선배교수의 충고는 적절히 걸러듣자! 

학교로 온 뒤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5번과 같이 생각하는 교수님들이 너무 많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감히 제가 생각하건데, 제가 속한 학문분야의 경우, 대학원생은 논문을 지도해야 하는 대상, 혹은 그 학생이 뛰어날 경우 함께 논문을 쓰는 공저자의 개념이지, 제 논문을 대신 쓰게 시키는 부하직원은 아닙니다. 
제 분야는 박사학위를 받기 전 논문 게재가 힘든 분야이기도 하구요. (제가 나온 미국대학에서는 대학원생의 논문게재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같습니다.
대학원생이 다 쓴 논문을 조금 수정해주고 공저자로 이름을 끼워넣는 일.. 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지난 학기 저에게 석사학위 논문을 지도받은 학생에게 "연구결과가 좋으니 국내등재지에 한번 투고해보라" 하고 권고했을 때, 
그 학생이 당연히 논문에 제 이름을 넣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만류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임용 후 첫 1년의 삶은 '정신머리 없음' 그 자체였습니다. 
각기 다른 6개의 과목에 대해 강의노트를 만들고 강의를 해야 했으며, 
각종 면접 및 심사, 교수회의에 참석하는 와중 연구제안서 작성, 산학공동과제 수행, 교재개발 등을 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연구는.. 빵점이었네요. 

'밸런스'를 맞추는게 참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 같습니다. 
선배교수님들께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을 도와드리면서 제 연구도 잘 해야 하고 강의도 잘 해야 하구요. 
향후 몇년 제 커리어는 이 밸런스를 맞추어나가는 노력으로 점철될 것 같습니다. 


4. 수입

국립대 교수 수입에 대한 글은 하이브레인에도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인문/사회 계열이고 외부 연구비 수주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본연봉(base salary)는 무척 낮은 수준이지만 각종 수당 및 기타 수입 등으로 보전이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마지막 교육연구학생지도비(줄여서 교연비라고 하더군요)가 들어와서, 2018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의 수입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국립대 교수 수입의 특이성때문에 세전연봉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적을 것 같구요, 세후 수입을 따져보겠습니다. 

월급(매달 정기적으로 통장에 찍힌 금액): 약 4천만원
교연비(1년에 3~4회 나누어서 지급되는, 별다른 일 없으면 받게되는 수당): 약 1,500만원
논문, 면접 등 각종 심사비(저는 외부 교원임용 심사도 있었습니다): 약 100만원
교재개발비(교과서 두 권을 공동집필했습니다): 약 400만원
각종 연구수당 및 사업수입(신임교원 연구지원제도에 의한 연구수당, 그리고 자세히 밝힐 수 없는, 학과 사업에 의해 받게 된 부가수입): 약 1,500만원
학회 논문발표, 기고 등에 의한 수당(해외학회의 경우 지원비 포함): 약 150만원

이정도 되네요. 
총 7,800만원 정도 통장에 찍혔습니다. 
세전 연봉으로 환산하면 1억을 딱 찍는데, 아내가 농담으로 "그 돈이 다 어디갔냐"라고 타박했습니다. 
실제로는 매달 300만원 조금 넘게 나오는 월급으로 생활을 하게 되고요, 나머지 돈은 자연스럽게 저축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자세히 밝혀드려서 발가벗은 것 마냥 창피합니다만... 1년 내내 정신없이 일했더니 부가 수입이 더 많이 들어오는구나, 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만약 학과에서 참여중인 사업을 전부 무시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혔더라면 2,000만원 정도 수입이 적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도 '밸런스'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밤낮없이 정신없이 일하면 그만큼 더 벌 수 있는 것이 국립대 교수직인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닐 때에는 딱히 그렇진 않았거든요. 야근수당 조금 더 받는 정도였지요. 
그렇다고 매일 밤 늦게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족은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는 소중함이 있잖아요. 

참고로, 제가 속한 국립대의 경우 연구 인센티브가 서울 소재 사립대에 비해 약한 편입니다. 
SSCI 논문을 쓴다고 해서 몇백만원 씩 주는 지원제도도 없습니다. 
research school보다는 teaching school에 가까운 분위기이고, 저는 국립대의 경우 지역사회 교육봉사에 대한 사회적 의무도 있다고 보기에 큰 불만은 없습니다. 

비서울 지역에서 외벌이로 살기에는 넘치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수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15년 가까이 된 차도 새차로 바꾸었고, 비록 전세지만 아내와 제가 등 따습게 누울 수 있는 집도 구했습니다. 


5. 생활

비서울권에서의 생활은 심심합니다. 하지만 여유롭기도 합니다. 

연고 없는 지역에서 새롭게 터전을 가꾸어 나가는 일은 유학시절 한번 경험했기에, 가끔 유학시절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유학생활.. 정도로 아내와 가끔 농담 삼아 이야기합니다) 

우선 집값이 낮아서 주거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그 외 물가에 있어서는 대형마트 등 일반적인 소비생활이 전국적으로 평준화된 이상 체감하기 힘듭니다. 

저희는 아직 아이가 없어 육아 및 교육 문제는 잘 모릅니다만, 어린 아기를 키우기에는 미세먼지가 확실히 덜한 이곳이 더 나아보입니다. 

하이브레인에서 많은 분들께서 지적하신 문화생활 문제에 대해서는, 저의 부부의 경우 가끔 서울에 올라가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달에 한두번 서울에 있는 단골 식당과 커피숍을 방문하거나, 
서울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대신 이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저희처럼 서울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고향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곳에서 온 분들과 다름과 같음을 느끼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서울이 아닌 이상, 그 어떤 문화적인 부분도 서울보다 뛰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요소들이 다 고려되어 집값이 낮은 것일테고, 또 그런 요소들이 덜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여유로운 도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겠죠. 
모든 일이 다 trade-off 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런 상충관계를 충분히 고려하고 이 곳을 택했습니다 
현재까지 큰 불만은 없고요, 맑은 공기에 감사하며, 부족한 맛집 수에 투덜거리며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있습니다. 


국립대에서의 생활은 서울소재 유명 사립대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연구 압박이 덜하구요, (승진 기준이 무척 낮습니다)
때문에 많은 교수님들이 일찍 연구에서 손을 떼시는 부작용도 보입니다. 
연구지원제도가 약하기 때문에 수입을 충당하기 위해 산학 쪽으로 많은 교수님들이 기웃거립니다. 
결과적으로 연구에 집중하는 문화는 아닌 것 같아요. 

학생 수준은 학부는 기대이상, 대학원은 기대이하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많은 학부생들이 '짓눌려' 있음을 느낍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한계가 스스로를 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용기와 기회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로 오기 전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teaching oriented 된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립대는 지역사회에 대한 교육봉사 의무가 추가적으로 부여된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러한 공무원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대학원은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한국인 학생이 잘 들어오지 않아요. 이건 서울소재 대학원도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양질의 학생이 대학원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강의 수준을 마냥 낮출수도 없고.. 고민중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대학원생에게 제 논문을 대신 쓰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반대로 잠재력 있는 대학원생에게 제가 가진 지식을 전수해주고 싶은 욕심도 있는지라, 이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우선 저부터 공부 생각이 있는 뛰어난 학부생이 면담을 요청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추천하고 있더군요. 



6. 결론

두서없이 갈겨 쓴 졸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두에 밝혀드린 바와 같이, 제가 이곳에서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생각에 써 보았습니다. 

다 쓰고 보니 알맹이는 없고 쓸모없는 하소연 뿐인 것 같아 송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훨씬 자세하게 정보를 드릴 수 있는데, 공개된 글이라 한계가 있어 아쉽습니다. 

임용시장에 계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본인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되고,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인성과 세평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인성이 뛰어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임용과정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서 '한 끝'을 가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전에 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 사소한 배려 하나,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을 많이 목격했고, 그 과정에서 또 한번 겸손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정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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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참 좋은 교수님이시네요
이런분들이 대학에 많이 임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용과정의 자세한 설명과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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