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학교생활: 시험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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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너무 많아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봐요.”
미국에서 큰아이가 시험이 너무 많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안쓰러웠다. 한국에서는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시험이 많이 없어졌고 전반적으로 시험을 줄이는 추세인데, 미국에 와서 시험 때문에 고생을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우리가 보기에 큰아이는 매일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시험 보는 과목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같은 과목에서 시험을 자주 보았고, 특히 수학과 과학 시험이 많아서 지인이의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겠구나 싶었다.
얼마 후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험지를 보고 깨달았다. 시험문제는 기초 개념을 묻는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중요한 개념은 반복해서 출제되고 있었다. 누구든 평소 꾸준하게 공부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으면 잘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한번 틀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내용은 다시 출제되기 때문에, 틀린 것을 기억하고 공부해 놓았다가 다음 시험에 제대로 맞히면 되었다. 중요한 개념을 반복해서 학습하면 오랫동안 기억 속에 저장될 수 있다. 정신의학의 많은 연구 결과에서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반복 학습만 한 것이 없다고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큰아이는 수학 시험을 가장 어려워했다. “어느 정도까지 자세히 써야 해요?” 수학 시험문제의 서술형 주관식을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의과대학 의예과에서 수학 시험을 본 것이 마지막이니 20년도 더 지났다. 얼마나 혼란스러우면 이런 아빠한테까지 질문을 할까 가엾기도 했다. 큰아이는 나를 닮아서 꼼꼼한 면이 있기에 무엇이든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붙잡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미국 수학 시험에서 증명 하나하나에 풀이 과정을 최대한 자세히 쓰는 것에 익숙해 있다가, 한국 수학 시험에서 문제 풀이를 쓸 공간도 별로 없는 서술형 주관식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난감했던 것이다.
“문제를 풀게 된 공식만 같이 쓰면 될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그렇게 공식만 쓰면 틀려요. 공식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지 점수를 받을 수 있거든요.”
“한국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맞는 공식을 쓰면 정답으로 인정해 줄 거야.”
“그렇게 썼다가 틀리면 어떻게 해요.”
큰아이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중학교 생활인데다 이번 학기 성적부터는 고등학교 입시 내신 성적에 포함된다고 하니 긴장을 많이 했다. 그것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두 번만으로 수학 성적이 결정되니 큰아이 입장에서는 더더욱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시험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격이나 불안 수준 등 개인의 특성과도 이어져 있겠지만, 시험과 관련한 상황도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능시험과 임용고시같이 한 번의 시험으로 입학과 진로가 결정된다면 시험 불안에 시달릴 확률이 더 높다. ‘이번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잘 못하면 끝장이야.’라고 생각해 긴장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험 한 번이 유일무이한 기회라면 수험생들이 받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엄청날 것이다.
일생일대에 중요한 대학입학수능시험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는 중고등학교의 시험 제도 자체가 시험 불안을 유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해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나오는 시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적은 시험. 문제를 풀지 못하고 답안지를 백지 상태로 제출하는 아이들의 심리 상태가 어떨지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른들은 늘 말한다. “네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 그런데 아이들의 힘든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험 제도든 부모의 태도든 지금 상태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 시험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기본 개념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도록 고안된 시험. 평소에 꾸준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험. ‘목표’가 아니고 ‘과정’인 시험. 나는 이런 시험을 만들어서 자주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공기처럼 일상의 존재가 된다면 앞으로 시험 불안이라는 단어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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