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긴 약속 찾아주기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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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하이브레인넷이 나날이 발전해 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확실하게 새단장을 했네요 ^^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의 연구자들을 위한 오아시스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

그럼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로 들어가면,

오늘은 원수지간이었던 독일과 블란서의 관계, 혹은 어두웠던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유럽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토대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재미없더라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

아 그리고, 독일(유럽)과 관련하여 새로운 싸이트가 문을 열었습니다. 주소는 http://www.germanylive.net 인데 한번들 방문해 보세요 ^^

감사합니다.

고민거리 드림
**


- 깨어진 약속 찾아주기 60년 -

역사를 뒤돌아 봤을 때 원수로 지내야할 독불관계가 양국 공동의 노력으로 해빙되었을뿐만 아니라, 공동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 양국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 엘리제협정과 같은 정말 용기있는 행동들을 양국은 해 왔고요. 한일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부러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데에는 정부당국의 노력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민간차원에서 역시 공동의 미래를 모색하고자 하는, 그리고 어두운 과거를 뒤로 묻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소개하는 두 기사를 보시면 그러한 모습들을 잘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11월 16일자 AFP통신: 18 deutsche Soldaten in Südwestfrankreich zur letzten Ruhe gebettet


세계 제 1,2차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독일 민중애도의 날, 블란서의 남서쪽에 위치한 Gironde-Mündung 근처의 Berneuil에 있는 군인묘지에 18구의 독일병사의 시신이 안치되어졌다. 일요일 아침의 이번 이장식에 약 200명이 참여를 했으며 그 중엔 보르도의 독일총영사인 Gudrun Lücke-Hogaust도 있었다. 이번 일은 많은 시선을 끌었는데, 특히 불과 몇주전에야 독일병사들에 대한 블란스 레지스탕스들의 보복행위가 완전하게 해명이되었기 때문이다. 열입곱 군인들의 사체가 침묵의 60년이 지나서야 보르도 동쪽에 위치한 Saint-Julien-de-Crempse에서 발굴되어졌다. Berneuil에 묻히게 될 18번째 군인은 1944년 8월 Gers지방의 Monferran-Savès에서 살해 되었었다.


2. 11월 4일자 Saint-Julien-de-Crempse발 AP통신:
Hingerichtete deutsche Soldaten in Südwestfrankreich exhumiert



남서프랑스에서 총살된지 60년이 지나서 17명의 독일군인의 사체가 발굴되기 시작했고, Saint-Julien-de-Crempse시의 초지아래에서 뼈와 잔여 옷가지들이 발굴되었다. 1944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에 의해 마을주민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교살된 군인들은 11월 16일 민중애도의 날에 한 독일의 군인묘지에 이장된다. 이 상징적인 행위는 그 당시의 레지스탕스였던 Emile Guet의 집요함에 기인한다.

1944년 8월 말, 레지스탕스의 한 장교로부터 전쟁포로로서 대하겠다는 약속을 들은 후에 독일의 무선병부대가 한 레지스탕스부대에 항복했다. 근데 그 2주전에 독일군들이 기습에 대한 보복으로 Bergerac에 있는 Saint-Julien-de-Crempse마을의 주민 17명을 교수형에 처했고, 그들의 나이는 18에서 80세까지였다.

1944년 9월 9일 레지스탕스의 다른 한 장교가 Bergerac에 있었던 항복한 무선병부대의 포로 17명을 현장으로 데려가라고 시켰다.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총살되어 목초지에 매장되어졌다. 마을의 공동체가 매년 살해된 마을주민들을 추모한 반면에 독일군인들에 대한 총살은 뒷전으로 내팽겨쳐졌다. "1977년 까지 그 마을의 모든 시장들은 독일인들이 그들 공동체의 구역에 묻혀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했었다"고 André Parvieux가 말했는데, 그는 11살이었던 1944년 복사로서 종부성사와 총살을 직접 목격한 산증인이다.

그런데 웬걸, Emilie Guet는 자신의 사관이 약속을 어겼었다는 것을 숨겨두지 않았다. 그는 Berneuil에 있는 군인묘지의 관리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관리자인 Julien Hauser는 마침내 5월에 Parvieux와 공동으로 시의회로부터 양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시장인 Yves Blondit는 이전 점령군들의 사체를 발굴하도록 허가했다. 불도저와 삽집을 통한 발국작업은 화요일 온종일이 걸렸다 한다.

Parvieux는 France-2방송국에다 "그들이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이었다면 그것은 정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다른이들처럼 책임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발굴작업을 쳐다 보며 그는 "만약 이것이 끝이나면 우리는 무거운 짐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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