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가슴이 두개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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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이번에도 제가 글을 올리는 시간에서 지각을 했습니다. 먼저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 아래에 있는 글은 제가 <사람소리>에서 저의 대학생활에 대해 적었던 글 중의 하나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대학시절, 그러나 저에겐 참으로 소중했던 시간대였던 것 같습니다. 저랑 같이 추억이 담뿍어린 그때의 시간들로 한번 돌아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 추억 속에서 무언가 의미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그러면서 또 활기찬 주말 맞으시길 바랍니다. 조잡한 저의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고민거리 드림 (http://saramsori.new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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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생활 2 - 그들은 가슴이 두개인걸까? >

고딩의 신분으로 밟아본 대학캠퍼스와 당당한(?) 새내기대학생으로 밟아본 대학캠퍼스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새내기로 대학의 캠퍼스를 밟던 날, 4년 동안 이 캠퍼스를 어떻게 주무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 군데군데에 비밀아지트를 만들 곳도 보이고, 또 술먹기에 아주 알맞은 곳, 그리고 데이트하기에 안성마춤인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ㅋㅋ그리곤 과룸으로 발길을 돌렸다. 좀 멍청하게(?) 서 있던 인문대학 건물은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좀 삭막해 보였다고나 해야할까. 그런데 과룸에 들어선 순간 삭막한 건물에 훈훈함이 흐른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개강도 하기전에 구경도 할 겸 인사차 찾아간 과룸에서 새내기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는 선배들을 만난 것이다. 선배가 꼬시기도 전에 제발로 찾아온 후배였기에 대접도 융성했다 ^^ 바로 그날부터 캠퍼스 주변 술집방랑기가 시작이 된 것이지. 돈도 필요없었다. 그저 따라만 다니면 밥에다 술에다 부족한 것이 없었으니까. 자취생활하던 나에겐 한마디로 밥해먹으로 집에 들어갈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

그런데 내가 대학을 들어가서 처음 만난 그네들은 누구였던가?

보통 과룸에 들락거리던 이들엔 다음의 무리들이 있었던 것 같다. 먹고놀기에만 바쁜 신바람파, 도서관에서 취직공부하다 과룸에 머리식히러 오던 바둑파, 전공또라이들, 그리고 팔다리운동권연합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만해도 운동권에 대한 심정적인 동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시대라 대부분의 과행사와 사적인 공간에서 오고가던 대화들은 주로 시국과 정세분석에 대한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정파간의 사상투쟁도 심심치 않게 경험할 수 있었고, 좀 부족한 부분들은 과내의 사회과학스터디들이나 여성학스터디를 통해 공급이 되어졌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개최된 단대별, 과별 엠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도 운동권가요를 익히는 것, 그리고 사회과학적인 내용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찍소리 하지 않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운동권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게다가 고딩 때까지 제도권교육을 통해 막힌 눈과 귀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한심한 느낌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호기심은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선배들의 후배꼬시기 작업은 물심양면으로 그리고 다각도에서 펼쳐지게 되니까 도망갈 곳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역시 좀 개성이 뚜렷한 학번이다 보니 색깔들이 한곳으로 모여지지는 않았었다. 입학동기들의 4분의 1정도는 가열차게 팔다리운동연합에 참여를 했고, 그 중엔 심지어 고딩 때부터 정치참여를 해온 이들도 있었다. 그리곤 소수의 전공또라이지원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신바람파회원들이 되었고, 게중엔 새내기생활을 할 때부터 도서관에 처박힌 현명한 취업준비생들도 있었다. 전공또라이지원자들과 취업준비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바람파회원들은 무색무취했는데, 학생운동에 대한 안티그룹은 아니었고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심정적인 동의들은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럼 난 뭘했나?

술하고 밥얻어 먹은 죄로 깃발들고 몇번 집회에 따라다녀봤다. 근데 결코 위험한 곳엔 가지 않는다가 철칙이었다 ^^;;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춤을 추던 가투(가두투쟁)는 좀 위험해 보이두만. 그리고 사회과학스터디는 주변에서 구경만 하는 데에도 정말 너무나 지루했다. 뭐 저런 기계적이고 도식적인걸 다 공부라고 배우남 ^^;; 단지 하나 재미를 느낀 곳은 북과 괭과리치고 장구치는 곳이었다. 거긴 신명이 나두만 ^^ 근데 역시 지긋이 뭔가 하나를 하지 못하는 기질이라 어느정도 배우고는 거기서도 도망나왔다. 아마 좋아하던 여자선배가 계속 있었다면 조금은 더 오래다녔을 지도 모른다 ^^;;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자 빨갱이(?)선배들이 사상적인 공격을 해 오두만. 처음엔 계속 꼬실려고 하다가 나의 천상천하유아독존 철학(?)과 인생은 쾌락을 추구한다라는 생활지침에는 결국 두손 두발을 들어준 것 같다 ^^;; 근데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가졌던 감성세대의 자유론과 행복론은 그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 비록 흐리멍덩한 점수를 받고 살았지만 "동기사랑 나라사랑"의 모토하에서 추억만들기라는 그룹도 만들고, 다양한 과와 단대를 섭렵하며 발넓히기와 껀수만들기를 참 잘했던 것 같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대학생활 ^^ 근데 왜 소개팅은 두번밖에 못해봤을까?!?

그런데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당시의 소위 운동권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가슴이 두개인걸까?

처음엔 몇 번 멋모르고 따라다녔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보기에 그들은 멍청해 보이기만 했다. 놀면 좋고 또 놀기에도 엄청 바쁜데 뭐하러 팔다리를 흔들러 다니는 걸까? 그렇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닐텐데. 돈은 뭐가 그리 많아서 후배들 뒤치닥거리 한다고 바쁘고. 아마 스스로는 굶고 살았던 것 같다. 심지어 야학이나 노판으로 뛰어드는 이들도 있었는데 아마 그들은 신세조질려고 작정을 했었던가 보다. 한발 더 나가 뭐가 잘 났다고 겁없이 시경철탑에 올라가 시위를 하다 감방에나 가고 말야. 그리고 무슨 비젼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운동권들에게도 졸업 후 진로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정말 대책없이 4년을 보내고, 그 후에도 대학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룸펜같이 되는 모습들. 특히 그들이 스스로 사상적으로 무장을 했다며 들이미는 사회과학 지식들도 그리 설득력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더더구나 그들이 가진 전공에 대한 지식은 정말 꽝이었고. 전공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전공스터디에 참여하게 되면서 난 서서히 전공또라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때부터는 심지어 팔다리운동연합을 조소까지 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따로 놀재이 하면서. 그리고 가끔은 지발 너희의 바이블인 강철서신 좀 다시 읽어봐라 라는 욕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사실에서 만큼은 내가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가진 행복론은 자기자신의 유익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들의 행복론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그네들은 분명 힘든 길을 갔고, 또 무언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보다 나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이유에서건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그들이 한 행위들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비록 내가 그들과 같은 길을 가진 않았지만 바로 이 한 물음 "그들은 가슴이 두개인걸까?" 앞에서 난 내가 참으로 작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을, 그네들의 "도덕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어쩌면 오랜시간동안 전공또라이가 된 내 모습에 자위하며 그들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에 더 많은 재미를 붙이고 살았었는지도 모른다. "야, 너 관념론이 대체 뭔지나 알고 지끼는 거니? 지발 극단적으로 천박하게 만들지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졸업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할 때에, 이상한 기회에 너무나 이상한 방법으로 내가 한동안 조소했던 그들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어버렸다. 늦게 바람이 나면 약이 없다던데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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